자살하는 기계

존재하는 것에는 원인이 있는가?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되어있는 걸까? 언제부터 이랬던 걸까? 왜 생명들이 저렇게 무언가를 향해서 비행하거나 움직이는 것 같고, 물체의 특성과 공간적 요소에 의해서 물질들이 마치 특정한 패턴으로 운동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리고 그렇게 운동하도록 만드는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천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그런 베일에 싸인 ‘비밀스러운’ 규칙들을 인간이 하여금 탐구하게 되는가? 사실 이건 현재까지 출현해 있는 모든 학문들의 코어 논리를 향해서 얽히고 설켜 있는 문제인 것 같다. 조금 놀라운 지점이지만 이들 분야가 가리키는 그 코어가 어째선지 다들 하나의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것이 논리학의 토대 위에서 설명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나는 도저히 못 하겠다.

우리는 ‘논리’를 경험할 수 있는가? 가장 일반적인 명제형식이 주어질 수 없다면, 우리가 ‘논리적 경험’이라는 것을 하는 순간이 와야 한다. 그런데 이건 불가능하다. 가령 (∃x)fx는 ‘x가 있어서 fx이다’가 아니라 참인 명제 ‘fx가 있다’를 의미한다. 명제 fa는 규정된 대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고, 일반적 명제는 모든 대상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지, 이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ㅡ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인간의 정신이 가질 수 있는 상태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이것이 유한하거나 무한할 경우 인간의 언어는 재귀성과 무한성을 가질 수 있는가? Rabin-Scott theorem에 의해 우리는 유한 상태 튜링 머신으로 자연언어를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이것이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스크린 속 화면이 보이게끔 하는 CPU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언어를 사용해서 모든 의미를 정의할 수 있다”라는 것을 의미하는가?

비결정론적 시스템을 결정론적 시스템으로 환원하면 시간 복잡도가 매우 커져서 연산이 현실적으로 무의미해진다. P=NP 문제는 여기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한 시간 내에 비결정론적으로 결정 가능한 시스템이 유한 시간 내에 결정론적으로 결정 가능한가에 관한 것이다. 초거대-시스템에서는 시공간을 무한대로 근사해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무한 상태 튜링 머신에 대해서도 P=NP 문제가 위와 동일한가? 불행히도 이는 동일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이 인간 의식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컴퓨터과학 이론의 대표적인 보기다. “세계는 결정론적인가, 비결정론적인가?” 라는 물음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질문이다. 인간이 ‘무엇이 결정론적이다’ 혹은 ‘무엇이 비결정론적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그 무언가는 모델에 해당하는 것이지, 시스템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