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___가 있었다

만약 어떤 자료를 두고 그게 ‘거의 현실을 설명한다’라고 하면, 그 ‘거의’의 정도를 따지는 기준이 얼마나 까다로워야 하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우스갯소리로 물리학에서는 모든 모델이 effective하게 설명될 뿐이고 그런 기술이 ‘언제’ 설명력을 잃게 되는가에 대한 감각이 중요한 반면에, 수학에서는 어떤 시스템이 작동하거나 그러지 않는가에 대해선 관심없고 단지 공리가 well-defined인가가 중요해서, 수학의 시스템은 보통 닫혀있고 물리학의 시스템은 보통 열려있다는 말이 있다.
일상어로서의 ‘거의’와 수학에서의 ‘거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확률론에는 4가지 수렴 개념이 있고(almost surely(=almost everywhere=with probability 1), convergence in probability, in distribution sense, in L^p sense), 여기서 어떤 명제 P가 ‘거의’ 참이라는 것은 P가 참인 점들의 집합의 measure가 1, 즉 거짓인 영역의 measure가 0이어서 적분에 기여하는 값이 없고 거리 확률 분포 등의 구조를 정의할 때 영향도 안 줘서 논리 구조에서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브라운 운동에서는 모든 경로가 almost surely nowhere differentiable이지만 differentiable path set이 공집합인 게 아니라 ‘uncountable이면서 measure가 0’이어서 그러한 경로를 절대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물리학적으로 almost는 무한 시간동안 관측해도 물리적으로 절대 발생 안 하는(관측 불가능한) 예외를 제거하는 것인데, 그게 확률이 아주 낮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사실상 ‘확률이 0이다’라는 말하고 동일한 거지 ‘0은 아니지만 0에 가까운’ 값이다 식의 의미는 아니고, 심지어 그게 ‘발생이 불가능하다’라는 의미인 것도 아닌 게, 저 정의대로면 샘플 안에 집합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예외를 무시한단 소리지 확률의 강도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서(*) a.e/a.s는 불가능한 사건을 배제하지는 않지만(그래서 논리적으로 필연적이란 의미는 아님) 사실상 영향이 없다는 의미이다.
일상적으로는 ‘거의 없다’ 라는 표현은 감정적/주관적/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거 같다. 예를 들어서 “경험이 거의 없다” 라고 하면 그게 객관적인 양을 말하는 게 아니라 걍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 정도면 별로 없는 거겠지’ 라는 기준이 있어서 그보다 많지 않다란 의미 정도일 때가 대부분이다.
만약 미래를 단순이 일상적으로 대충 이렇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정량적으로 추정한다고 한다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확률)과 모델 내지 가정에 대한 증거(우도) 데이터로 비교해야 하고, 그에 대한 가정을 뭘로 ‘선택’하냐에 따라 ‘영향 없음’이라고 간주하고 cutoff로 날려버리는 경계선이 정해질 것이다.
(*) 이건 통계역학에서도 나온 것이긴 하지만 볼츠만 엔트로피에서 microcanonical ensemble의 state space measure가 $\Omega$인 것이고, 여기서 엔트로피가 작은 macrostate는 measure가 0에 가까워서 사실상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단 의미는 아닌 것과 같다. 확률이 0이라고 해서 그게 실제 세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phase space에서 어떤 특정 점을 정확히 뽑을 확률은 0이지만 실제 물리 실험에서는 분명 어떤 하나의 point microstate에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한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기체 분자들이 구석에 죄다 모이는 상태가 일어날 확률은 사실상 0이지만 그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는 아닌 것과 같다. 근데 여기까지는 뭔가 고전역학적 접근인 거 같고 양자역학에서 확률이 0이라는 건 힐베르트 공간의 벡터에 해당하는 어떤 상태에서 관측량, 즉 self-adjoint operator의 고유상태가 관측될 확률이 Born rule에 따라 내적의 제곱으로 정의되고, 이 경우 sample space가 연속적이라 쳐도 사실 사건을 ‘관측’한다라는 것의 의미가 애초에 고전역학에서처럼 사건 집합 자체를 측정하는 게 아닌 게, 일단 여기서의 사건이라는 건 힐베르트 공간의 특정 부분공간에 파동함수를 projection 해주는 operator고, 관측이라는 건 그런 부분공간으로 collapse되는지에 관한 것이니 양자역학에서의 사건에서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measure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여기서의 확률이 0이라는 건 진짜로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단 의미이다. 물론 진짜 measure가 없다기엔 실제론 spectral theory에서 spectral measure 위에 양자역학을 정의할 수 있고 그런 measure가 PVM인 셈이긴 하지만.. 근데 막 실험 해보면 이 교과서적인 PVM만으로는 양자 모델링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실제 자연에 projective measurement만 한다 쳐도 우리가 관측하는 건 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실험 환경에선 irreversible한 노이즈가 껴 있을 수 있고, 검출기 효율이 100%도 아닐 거고.. 그래서 effective하게 저런 projection operator가 아니라 positive operator을 정의하는 대신 별도의 measurement statistics가 필요한 POVM 같은 것도 있다 (근데 더 큰 힐베르트 공간에서 보면 PVM 측정과 같은 거라고 한다)